






보물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
이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는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 쿠르티우스 발굴팀에 의해 그리스 제우스 신전에서 발굴된 것. 기원전 콘텐츠이용료 정보이용료 그리스 코린트 지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에서 투사들이 마상경기를 할 때 쓰거나 경기에서의 승리를 기원하고 신에 대한 감사의 뜻을 바치고자 만들어진 것.

1936년 올림픽은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있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개최됨
우리나라는 일본에 강제로 합병되어 나라를 잃은 상황
일본은 베를린 올림픽에 콘텐츠이용료 정보이용료 선수를 일본 선수로 등록 시켰고
마라톤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단 우리 선수들은 1위(손기정)와 3위(남승룡)을 기록

20세기 전반기엔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그리스 유물을 부상으로 주는 것이 관행이었음
제 2회 파리올림픽(1900)부터 시작.
기원전 490년 아테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뒤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약 40km를 달려온 병사 페이디페디스를 기리기 위한 것.
당시 베를린 올림픽에서도 그리스의 브라다니 신문사가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를 부상으로 내놓음
이러한 관행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고대 유물유출 방지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계속 되었음
하지만 베를린 올림픽 이후 바로 두 올림픽(40,44)은 세계대전의 여파로 취소 되었기 대문에 사실상 2차 세계대전 직전 열린 베를린 올림픽과는 큰 관련이 없어보였지만
ioc는 ‘아마추어 선수에게 메달 이외에 어떠한 부상도 줄 수 없다’며 손기정에게 투구를 전달하지 않음
손기정은 이러한 부상이 있다는 자체를 몰랐고 일본은 식민지 출신 우승자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항의 하지 않음
이후 50여년간 베를린 샤로텐부르크에 위치한 한 박물관에 전시된 이 청동투구의 설명판에는
‘그리스 코린트 시대의 투구/
마라톤 승자를 위해 아테네 브라다니 신문사가 제공한 기념상/
제 11회 베를린 올림픽 1936년/
손기떼이(손기정의 일본어 표기)/
일본/
2시간 29분 19초'
라고 독일어로 명시됨
그러다 1975년 손기정이 앨범을 정리하다 부상으로 그리스 투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반환 추진 중 투구가 독일 박물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됨. 그러나 독일 올림픽 위원회는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절대 돌려 줄 수 없으니 대신 복제품을 주겠다는 입장만을 고수. 그 후 동아일보사, 대한올림픽위원회, 그리스 브라다니 신문사, 그리스 올림픽 위원회가 공동으로 반환 추진


마침내 1986년 베를린 올림픽 50주년을 기념해 결국 반환
1987년, 2600여 년 전 만들어진 귀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학술적 가치와 더불어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긍지를 높여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의 상징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 받아 서구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됨
1994년 손기정은 이 투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