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202년 고조 유방은 라이벌이였던 항우를 물리치고 전한의 황제가 된다. 날건달이였던 그는 한신과 소하 그리고 좋은 장수를
중용하여 대업을 완수하게 된다.
전한 5대 황제 문제와 경제는 흉노족의 압박과 오랜 전쟁의 생활고에 지친 백성들을 위한 선정정치를 하였으며 대외 정책을 하고
나라를 윤택하게 만들었다. 6대 경제 치세에는 지혜로운 영천 사람인 조조(헉!) 등용하여 활용하였다. 그러나 왕족 세력인
다른 제후국에서 반란이 일어나고(오초7국의난) 오나라쪽의 유비(헉) 왕 등 다른 제후국들이 동조하였으나 조정의 군사들에게
반란이 진압되었고 국가는 더더욱 융성해졌다.(문경지치)
한나라 최고의 전성기 한무제가 즉위하고 문경지치의 강성한 국력으로 국가의 상당수를 군사력으로 동원하였고 곽거병, 위청들의
중국 1등급 장수들을 앞세워 유방을 죽음의 위기까지 몰고갔던 흉노를 정벌하였는데 곽거병의 도박수로 흉노 본진까지 쳐들어가는
기마 전격전으로 흉노족은 바이칼 호수 넘어서까지 도망가게 되었다. 또한 한무제는 한반도 만주등의 위치한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곳에 통치 기관인 한사군을 설치하였다.
기원전 8년 저물어가는 황실을 왕망이라는 자가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웠다, 그는 개혁적인 정전법등 여러가지를 시도한
개혁적이였지만 백성들의 평가는 높지 않았다. 결국 신나라는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고 멸망당하였으며 이후 광무제라는 인물이
후한을 세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군주 중 한명으로 칭송받는 광무제 유수)
광무제는 마원이라는 노익장에게 복파장군에 임명하고 남만을 넘어서 베트남쪽 반란을 진압하라고 명령하였다.
베트남은 후한의 속국이였으나 배트남의 위인이자 여전사로 불리우는 쯩자매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웠다.
경험많고 노련한 마원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였다., 쯩자매는 필사적으로 대적하였으나 패배하였고
두명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후에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기 전 마원의 초상화 앞에서 의식을 지내고 성공을 빌었다고 한다.
쯩자매는 대국 중국에 맞써 대적한 영웅으로 베트남의 잔다르크라 불리우며 칭송받고 있다.
후한 말엽에 나쁜 간신이였던 양기가 온 나라의 권력을 휘젔고 있었다. 당시 황제였던 충제는2살밖에 되지 않았고
모든 권한은 양기가 전횡을 휘둘렀는데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죄다 옥에 가두고 충신또한 황제에게 간언하지 못하였고
외척 세력이 황제 주위를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충제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게되었고 다음 황제인 질제가 즉위하였지만
그 역시 힘을 펼치지 못하고 양기에게 복속되었다. 황제를 보필하는 가까운 세력은 고자들의 집단 환관들이였다. 주위
권력들을 죄다 양기의 외척세력이 차지하였기 때문에 오로지 속마음을 환관에게만 털어놓았고 이것이 환관 정치의 시작이였다.
온 사방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그의 세력을 보고 화가 난 황제는 악담을 퍼부었지만 양기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질제를 암살시켰다.
그리고 양기의 목숨을 조여올 다음 황제 환제가 즉위하였다.
환제 치세 역시양기와 그의 동생 양태후의 전횡은 계속되었다. 후한의 멸망에 시작을 연 그들이지만 최후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
양기의 부인은 사촌이였던 동명이인 다른 양기의 부인 선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여인은 전남편과 낳은 딸이 있었다. 등맹이라고
하였는데 어찌나 미모가 뛰어난지 양기는 이 딸의 이름을 왕맹으로 바꾸고 환제의 부인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가졌고 그의 어머니인
선을 입막음하려고 암살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실패하게 되고 그 사건을 환제에게 모두 말하였다.
화가난 환제는 환관 세력과 규합하여 양기의 세력을 치고 그들의 세력을 모조리 사살하였다. 양기는 높은 권력을 가졌지만 후한은
아직도 황제의 나라이다. 그는 황제를 이길 수 없었고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1차 당고의 금
사태는 심각하게 흘러갔다. 양기의 권력을 빼앗은 환관들은 그와 똑같은 전횡을 부렸다. 사치를 일삼고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 지방 토지들을 모두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후한의 쇠퇴를 보고 각 지방의 선비들은 환관의 악행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무리를 지었는데 그것이 청류파이다.
수나라의 과거제도가 확립하기 전 중국은 향거리선이라는 제도를 통해 관리를 뽑았는데 지방 출신중에 머리가 뛰어난
사람을 각 고을에서 추천 받아 정부에 올리는 방식이였다. 그들 다수는 청류파라 해서 환관들과 대적하였는데 황제 역시
환관의 세력이 크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그는 무력하였다. 황제는 다시 외척 세력 두씨를 이용하여 환관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키우려 했지만 환관들은 외척 세력과 청류파 관리들 다수를 무고를 이용하여 잡아들였다.
재판에 선 청류파 선비들은 기지를 발휘해 심문 과정에서 자신과 연관 된 인물들 중에 다수를 환관 친척들을 뽑았고
환관 세력은 당황하였다. 고문을 하고 옥에 가두었지만 결국 그들은 풀어줄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친척이 연류 된 진술을
채택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2차 당고의 화
이제 후한의 마지막 헌제 앞에 황제였던 영제가 즉위하고 영제는 다시 외척 세력 두씨를 섭외하고 환관을 몰아내려 하였다.
환관은 바보가 아니였다. 이미 권좌를 쥐고 있었기 떄문에 황제 조차 감히 대적 못하였으며 외척 세력은 청류파 수장인 이응
등을 이용하여 몰아내려고 하였지만 먼저 선수를 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청류파와 외척 세력들이 다시 잡혀오게 되었다.
외척 수장 두무는 자살하였으며 청류파 수장 외에 다수의 청류파 세력들은 다시 끌려오게 되었고 심문을 받았다.
1차 떄 같은 진술을 할 수 없게 철저하게 준비하였고 청류파 다수는 사형에 쳐해졌고 호족 밑 사대부 세력들은 극단적으로 배척
당하면서 후한의 몰락이 가속화 되었다.
이 당시 지방의 똑똑이들은 정부로 나서면 바로 환관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초야에 묻혀 있었다고 한다. 이 능력자들을
배척하고 환관들은 주요 관직에 자신의 세력만을 꽂았다. 그들은 지방에서 뇌물을 받았으며 제대로 된 통치를 못했고 백성들은
원망하였으며 배고파 죽었다.
이것이 환관이였던 십상시의 전횡과 배고파서 못살겠다던 백성들의 난 황건적 집단 이야기의 시작이였다.
어떤 사람은 황건적이 아니라 황건군이라고 명명하는 사람이 있었다. 단순히 도적이 아닌 굶주린 백성들의
처절한 울림이라는 시각이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그떄 당시 환관들의 전횡으로 후한은 지옥과도
같았으니 ...............
재밌게 읽으셨다면 추천 부탁 드립니다 ^^
진시황의 아버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여불위 이야기 1 https://www.fmkorea.com/2350722941
진시황의 아버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여불위 이야기 2 https://www.fmkorea.com/2351888815
삼국지 옥새의 기원과 인상여 열전1 부
https://www.fmkorea.com/2349384152
삼국지 옥새의 기원과 인상여 열전2부
https://www.fmkorea.com/2349530643
삼국지 옥새의 기원과 인상여 열전3부
https://www.fmkorea.com/2349969248
로마에게 신의 째찍을 하사하였던 아틸라 대왕https://www.fmkorea.com/2352590888